타란티노는 발에 미쳤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동료는 쇄골 패티시가 있다. 지리멸렬하고 숨막히게 칙칙한 남성복 디자인에서 쇄골을 노출할 일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가 디자인한 고상한 정장은 중세 시대 여자들의 파티복만큼 쇄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그의 패션쇼에 초대될 때마다 마치 발 패티시가 있는 것처럼 신체의 아랫부분에만 시선을 두려고 애쓴다. 멀쩡한 양복의 양 어깨를 흉하게 잘라내거나 갈기갈기 찢어서 구멍을 숭숭 뚫린 사이로 보이는 쇄골은 정말이지 볼썽사납다. 아무리 좋은 술친구라지만 그의 미의식에는 당췌 동조할 수가 없다.
매끄럽고 차가운 이성이 빛나는 검정색 혹은 짙은 갈색, 남색의 구두 위로 라인이 딱 떨어지는 양복 바지. 검정색인지 회색인지 애매모호한 벨뱃 바지에 호기심이 갖고 천천히 위로 훑고 올라가다보면 마초와는 거리가 먼 가느다란 손가락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 틀림 없는 불쑥 솟은 주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그 언덕배기 옆으로 어둠 속에서 시계를 찾아 더듬듯이 시선을 옮겨 보면 거기에 나를 흥분시키는 그것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쇄골에 미친 그를 욕할 처지가 아니란 건 잘 안다. 그가 스리쓸쩍 잘 생긴 어린 모델의 쇄골을 만지작거리며, 정신이 홀려 있는 동안 나는 온통 지퍼에만 신경이 가 있다는 걸. 가늘고 작은 이빨이 맞물려 있는 두 줄의 그 지퍼 말이다. 나는 지퍼를 사랑한다.
그는 대단히 고고하다. 유약하며 제멋대로인 것들 사이에서 홀로 강인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마치 "그래, 열어볼 테면 열어봐!"라고 외치듯이 빛나는 긍지를 숨기지 않는다. 환경이 혹독할수록 더욱 차가운 이성을 잃지 않으며, 굳게 입을 닫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개방적이다. 밝은 빛을 반사하는 지퍼 고리를 손에 쥐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의 부드러운 손길에 따라 알알이 잠금해제하는 지퍼의 헐떡임을 느낄 수 있다. 지독한 고집을 꺾고 사랑 앞에 무장해제되듯이 속에 감추고 있던 것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과감함을 보인다.
나는 그한테 자주 나의 지퍼를 무식한 옷더미 속에 감추지말아달라고 애원하곤 한다. 단추 사이로 보이는 속살에 흥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차가운 금속성의 지퍼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그 세계를 침범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지퍼만 보면 나는 지퍼를 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바지의 앞춤, 치마의 옆선, 허리에서 엉덩이로 떨어지거나 목덜미 뒤로 지퍼가 보이면 나는 그것을 열고 속에 있는 것을 만져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앞뒤로 지퍼가 달린 미니스커트를 입은 거리의 나래이터 모델이 허리를 숙였는데, 그만 지퍼가 터져도 짜릿할 것 같다. 가슴 아래로 여러 조각이 지퍼로 결합된 청재킷을 배에서부터 등까지 하나하나 지퍼를 열어가는 것도 재미있다. 양옆의 통지퍼로 이루어진 라텍스 바지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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