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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2011년 07월 31일 2023년 03월 02일

#남자 편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 헤어진 다음 날, 이현우

 


 

여자 헤어져.

아직도 한참 밤중인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남자는 습관적으로 어둠 속을 더듬어 시계를 찾았고, 희미한 불빛 아래 2시 30분을 향해가는 분침을 확인했다.

머리가 아프다. 남자는 한 쪽 손으로 이마와 맞닿은 오른쪽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스르륵. 한 줄기 눈물이 고일 새도 없이 눈가로부터 시작해 귓바퀴를 휘감고 베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훌쩍일 때마다 남자의 몸이 가볍게 흔들린다. 남자가 어떻게 해서든 눈물을 멈추려고 큰 숨을 한 번 들이켜자 이번에는 명치 끝이 아프게 아려왔다. 심장이 칼로 베이는 것만 같다. 그래도 남자는 큰 소리를 내어 울지는 않았다. 다행히 같이 사는 형이 예비군 훈련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은 터라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었으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다. 사랑에는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건만 헤어지는 마당에 자존심을 찾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남자는 다시 잠들려고 노력했다. 자꾸만 어제 밤 상황이 떠올라서 괴로웠지만 어쨌든 지금은 한밤중이고, 누구든 잠들어 있어야만 하는 시각이다. 한 시간, 두 시간째 자다 깨다를 반복한 남자는 정확히 4시 30분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불을 켰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가래를 뱉고, 오줌을 누고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돌아왔지만 시간은 고작 2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이 더럽게도 안 간다.

반지하의 장점이자 단점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커튼만 쳐있으면 한낮을 오밤중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밤새 뒤척이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아침에서 점심을 향해갈 무렵이었다. 남자는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어젯밤 피다 만 담배꽁초를 찾았다. 그리고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겨우 찾아낸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몇 모금 빨지도 못하고 버려질 담배꽁초. 하지만 당장은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 순간 담배라도 없으면 딱 죽어버릴 것만 같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이내 좁은 방을 가득 채운다. 형이 있다면 한 소리했을 텐데. 입에서 뿜어져 나와 힘 없이 흩어져 내려 앉는 담배 연기. 어쩐지 지금 자신의 심정을 닮은 것 같다.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 눈에 반해서 가슴앓이를 하다가 2년 만에 말을 트고 다시 6개월이 지나서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첫 키스조차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와 가까워지기까지 그토록 힘들었건만 헤어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여자 헤어져.

바로 “왜?”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남자는 떼려던 입술을 다시 닫고 가만히 서있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기다린 건지도 몰랐다. 그녀의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 자주 들르던 도산공원. 파릇한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낡은 운동화에 걸린다. ‘벌써 낙엽이?’ 남자는 이 순간에 엉뚱하게도 낙엽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자 (돌아보며 힘주어) 헤어지자구! (안색을 살피며) 괜찮지?

아주 작은 담배꽁초였을 뿐인데,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해 방 안은 밤안개가 핀 것처럼 뿌였기만 하다. 그리고 남자는 벽에 기대어 이미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린 담배꽁초의 잔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한 쪽 다리를 세워 팔을 올려 놓고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 맵다.

그래, 너한텐 모든 게 간단하겠지. 넌 예쁘고, 인기도 많으니까. 난 그와 기회를 만들기 위해 2년을 기다렸다. 공부도 잘했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좋은 회사에 입사했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지던 동창 모임을 꾸준히 참석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에 겨우 용기를 내어 신청한 영화관 데이트. 해리 포터가 어떤 마법을 부리는지 전혀 보지 못했고 옆 자리에 앉은 그만 의식하느라 3시간 동안 긴장해서 첫 데이트부터 소화제를 찾아야 했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시간들. 남자는 아까부터 명치 끝을 굵은 대바늘로 꾸욱 찔렀다가 아주 천천히 빼내는 것 같은 느낌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심하게 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잠을 제대로 못잔 데다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남자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허기를 당해낼 장사는 없다고 하던가! 한 두 시간을 잠들지 못하고 잠에서 깬 건 지독한 허기 때문이었다. 내내 어두컴컴한 방안에만 있어서인지 약간의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 주방이 엄청 밝게 느껴진다. 냉장고 안에는 다행히 라면 한 개와 접시가 아무렇게나 덮여 있는 신 김치가 있었다. 형은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마음이 허하다면서 냉장할 필요가 없는 라면을 굳이 넣어놓고는 했다. 남자는 설거지가 안돼 있는 냄비를 대충 씻어 내고 물을 올렸다.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아까 피운 담배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남자가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0분이나 지나서 였다. 딴 생각을 하다가 자꾸 물이 다 없어져버려서 다시 끊이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말 같다.

숫기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애는 이번이 처음이다.



# 여자 편

어제 아침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올 수는 없나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 헤어진 다음 날, 이현우

 

 


남자 사랑해.

늦잠을 잤다. 햇살이 너무 밝아서 아예 창문을 뚫고 들어올 기세다. 그것도 모르고 한참 잠들었으니 여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후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피부가 보송보송한 게 오늘은 화장이 잘 먹을 것 같다.

여자 (주방에 들어서며) 왜 안 깨웠어?
엄마 푹 잘 자는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깨웠지.

여자 내가 그렇게 잘 자고 있었어?

엄마 그래, 맨날 피곤해 하더니.

여자 (어리광부리듯) 오늘 메뉴는 뭐야?

엄마 엄마표 된장찌개.

여자 (고개를 끄덕이며) 음. 두부에 표고버섯 송송 썰어 넣은, 엄마가 제일 잘 하는 거?

엄마 너도 시집가기 전에 요리나 배워 둬. 괜히 시어머니한테 한 소리 듣지 말고. 남자는 요리 잘 하는 여자한테 뻑 가게 돼 있다.

여자 (큰 소리로 웃으며) 엄마는. 뻑 가게가 뭐야? 교양 없이.

엄마는 눈을 흘겼다. 여자의 애교는 엄마한테서 유전된 게 틀림 없다. 여자는 잠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흰 쌀밥과 된장찌개와 며칠 전에 새로 담근 깍두기, 쇠고기 장조림, 그리고 윤기 있게 빛나는 콩자반. 배고픈지 빠른 속도로 밥을 비워 가는 여자. 그러나 여자의 젓가락은 결코 콩자반에는 닿지 않았다. 콩자반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이지만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여자는 늘 콩자반은 밀어내곤 했다. 그런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콩자반을 맛있게 먹어대는 두 남자. 아무리 먹어도 간장 맛 뿐인 걸 남자들은 왜 콩자반을 좋아할까?

여자 어, 나야. 지금 밥 먹고 있어.

친구 오늘 어디에서 만나?

여자 명동에도 커피숍 있을 것 아냐?

친구 (펄쩍 뛰며)뭣 하러 커피 마시는데 돈을 써. 그 돈으로 쇼핑 실컷 하고 저녁을 근사하게 먹는 게 낫지.

여자 (숟가락을 입에 물고)그럼, 어디에서 만나?

친구 명동예술극장 입구에서 만나자.

여자 그게 어딘데? 친구 롯데 영플라자 맞은 편에 명동 입구 있잖아. 가다 보면 10분도 안돼서 명동예술극장이라고 큰 건물이 보여. 오후 두 시면 공연 시작 전이라 한가할꺼야.

여자 응, 알았어. 근데, 너 늦는 것 아니지?

친구 어머, 얘가! 내가 언제 늦었다고 그래!

여자 너 나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아니야, 늦는 사람이 밥 사기 어때?

친구 참 나. 친구끼리 너무 한 거 아니니?

여자 약속시간이 2시니까 10분은 봐주겠어.

친구 (얄밉다는 듯이)너나 늦지 마셔!

여자 (장난스럽게)이따 봐.

친구 으휴, 얄미운 년.

친구가 전화를 탁 끊어버린다.

엄마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

여자 응. 왜? 엄마 오늘 저녁에 너희 아빠랑 외식하기로 했으니까 너무 늦게 들어오진 마.

여자 오늘이 그날이었나? 알았어!

여자는 미소지으며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설거지하고, 방 청소에, 세탁기까지 돌리고 다니 벌써 출발할 시간이다. 여자는 급한 마음에 앞치마를 벗어 걸어놓는 둥 마는 둥 방안으로 들어와서 옷장을 열었다. 쇼핑할 때는 옷을 잘 입어야지 매장 여직원들한테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입을 만한 옷이 마땅치가 않네! 그래서 오늘 쇼핑을 하러 가는 거지만. 그가 사준 분홍색 원피스. 여자는 잠시 멈칫한다. 오늘 같은 날에는 화사한 색깔의 원피스도 괜찮을 것 같지만 여자는 원피스를 내려 놓고 회색 줄 무늬 치마와 흰 블라우스를 선택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뭔가 허전하다. 참, 스카프! 여자는 늘 코디가 애매할 때 애용하는 스카프를 생각해냈다. 한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스카프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드는 순간, 공교롭게도 그가 100일 기념으로 사준 거라는 게 떠올랐다.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옆에 있는 다른 스카프를 손에 들었다. 정말 날을 잡아서 옷장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명동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친구는 명동예술극장에 정확히 2시 9분에 도착했고, 저녁은 더치페이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명동은 매번 갈 때마다 거리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여자는 주로 백화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명동 안쪽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유독 친구가 시장 바닥 같은 명동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이 친구하고만 명동에 오곤 한다. 수다스러운 두 여자는 금새 활기를 띄며 여자는 회사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오피스 룩을 찾기 시작했고, 친구는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고야 말겠다고 들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방은 백화점에서 사기로 했다.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다양하게 입을 수 있는 옷에 비해 가방은 종류가 적고, 구두와 함께 코디를 완성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좋은 걸로 사야 한다는 게 여자의 생각이었다.

친구 이거 어때?

여자 글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친구 예쁜데. 왜 마음에 안 들어?

여자 (다소 시크둥하게) 마음에 들면 네가 사.

친구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난 오늘 구두만 살꺼라니깐!

금새 다른 제품에 한 눈을 파는 친구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여자는 다시 옷걸이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쇼핑을 좋아하는 건 쇼핑을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쇼핑을 하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남을 배려하고 온갖 고민을 안고 사는 여자들은 쇼핑을 하면서도 적어도 이 순간만은 내가 주인인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명동에 있는 모든 옷 가게와 구두 가게를 가봤어야 했는데, 일찍 들어가야 하는 여자의 사정에 아쉬움을 느끼며 조금 일찍 쇼핑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갔다.

새로 생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였다. 서빙을 보는 젊은 남자애는 귀여웠고, 음식도 맛이 있었다. 원래 크림 스파게티는 잘 하는 집을 찾기 어려운데 이 집은 생각외로 괜찮다. 여자는 앞으로 명동에서 데이트할 일이 있으면 또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가 두 손 가득 쇼핑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것은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여자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너무 늦은 것 아니지?

엄마 생각보다 빨리 왔네. 우리 딸.

여자 다행이다.

엄마 (쇼핑 가방을 들어주며)마음에 드는 건 샀어?

여자 응. 지금 나가려고?

엄마 너 올 때 딱 맞춰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지. 사워 물 받아 놨으니까 사워하고 쉬어.

여자 알았어. 고마워. 아빠, 오늘 엄마 맛있는 거 사줘야 돼!

엄마, 아빠가 대문을 나서자 문득 텅 빈 집안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여자 아, 다리 아파.

평소 같으면 샤워부터 했을 게 분명한데, 어쩐지 여자는 쇼핑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는 스타킹을 벗고 부은 듯한 발을 매만졌다. TV에서는 방금 전까지 부모님이 보고 있었던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깔깔대면서 과장되게 웃는 리포터가 가식적으로 보인다. 여자는 한 동안 멍하니 TV를 바라보다가 무엇에 홀린 듯 사가지고 온 쇼핑가방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분홍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데, 프릴 장식도 마찬가지야. 그가 예쁘다고 말한 미색 블라우스. 맙소사 똑같은 스타일을 또 샀네! 언젠가 내가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한 청치마…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봐.

투둑.

충격을 받은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땅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자 여자는 약간은 안심이 되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자 (차분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거야. 나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남자의 침묵이 길어지자 여자는 초조한 기분이 들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남자 헤어지고 싶어?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헤어지고 싶냐구? 헤어지고 싶으니까 말을 꺼냈지. 이 바보야! 내가 헤어지자고 말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처음에는 사랑한다면서 매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내 말대로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사랑 없이 시작한 내가 잘못이다. 몰래 사귀고 있던 직장 동료가 해외 지사로 발령 난 게 화근이었다. 마침 남자 친구가 한국을 떠나던 날, 그가 진작부터 나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트 제안에 쉽게 응했고, 짧게나마 사랑하는 사람의 빈 자리를 조금은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 하는 것도 미안했고, 그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대로 끝내는 게 그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사랑하지 않았는데. 사랑하지 않은 게 맞는데. 사랑한 적이 없는데. 여자는 갑자기 밀려드는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큰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한 속으로 입을 가리고 흰 블라우스의 소매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 돼버리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목놓아 울었다. 그리하여 거실에는 한 동안 여자의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ㅡ

이현우 1998년 앨범 <Freewill of My Heart> 수록곡 '헤어진 다음 날'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31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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