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는 공기가 탁했다. 지하라서 그런지 더 후덥지근하고, 사람들은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덩달아 나의 머릿속도 비워져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한 길을 걸었다. 땅에서 솟아오른 듯 하늘에서 내려온 듯 그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첫 번째는 붙잡았고
한눈에 반한다는 게 무엇인지 안다. 멀쩡하게 잘 가던 시간이 멈추었고, 평소라면 요란하게 들렸을 초침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배경이 뿌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화영화나 공상과학 드라마를 보면 시간을 정지시키는 장면이 나오곤 하는데, 딱 그 짝이었다. 내 눈앞에는 오로지 그만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운명이다. 그는 나의 영혼을 그대로 복사해서 이성으로 바꿔 놓은 듯했다. 그래서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그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두 번째는 흘려보냈다
눈알이 까만 새우젓 사이로 그가 눈에 들어온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누런 소 무리 가운데 홀로 튀는 보랏빛 소처럼 내 눈 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의심하지 않고 직진했다면 이번에는 한 번 숨을 쉬고 잠시 그 장면에서 떨어져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아는 척하지 않아도 그가 나를 알아본다면 그는 운명의 상대인 거야.' 그렇게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고 복잡한 지하상가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것이 이별의 징조일지도 몰랐다. 내가 잘못 봤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