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죽기로 마음먹기까지 방황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처음에는 죽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죠. 하지만 좀처럼 그게 보이지 않았어요.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살아야 할 이유만 줄어드는 거에요.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봐도 온전히 나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요. 전 쓸모없는 인간이거든요.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혼자서 목놓아 운 적도 있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원룸은 방음이 잘 돼서 옆 방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거예요.
그렇게 울다가 속으로는 도움을 요청하면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아니,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가 마냥 공허하게만 들렸죠. 그러다가 건강검진을 받게 됐는데, 문진표를 작성하다가 그만 낯선 간호사 앞에서 울뻔했어요. 문항은 얼마나 자주 자살하고 싶으냐는 말이었죠. 그 뒤로도 길고 긴 문항은 부정적인 답변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찾아간 문진표를 보면서 의사는 혈당, 콜레스테롤, 신장, 요단백, 흉부 모두 정상이라며 기쁘게 경쾌한 목소리로 축하의 말을 건넸어요.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이 있었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죽기로 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역설적으로 갑자기 바빠졌어요. 미래가 없으니 열심히 돈을 모을 필요도 없죠.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텐데 통장에 공 하나가 늘어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뒀던 일들도 떠올랐어요. 드디어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길 시점이 된 거에요.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당최 지금까지 뭐했나 모르겠어요. 부자도 될 것도 아니면서 마음 놓고 돈을 쓰지도 못했고, 성공하지도 않았으면서 분주하기만 했어요. 정작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정말 바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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