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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웬만하면 일제를 사지 않으려고 한다. 일본어 노래도 가급적 피한다. 역사때문에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콘텐츠를 보거나 쇼핑할 때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역사를 되짚어 공부하다보니 이제는 일본어를 듣는 순간 자동으로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아픔이 떠오를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일본이 자랑하는 부, 기술, 노벨상, 올림픽 등은 우리 땅의 자원을 수탈하고, 우리 선조의 고혈을 빼먹은 결과다. 흔히 매국노의 자손이 일본에 충성한 대가로 얻은 부로 호의호식했다고 비판하는데, 일본이야말로 그짝이다. 한국에는 대대로 부자인 사람은 없다. 그런 집안이 있다면 민족 반역자 뿐이다.

 

어릴 때는 만화영화 중독이었다. 하루 일정을 TV 만화영화 시간에 맞춰 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해 마지않던 작품들이 상당수 일본 작품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 그 배신감이란! 그렇게 서서히 만화영화와 멀어져 갔다. 마침 TV가 망가진 것도 도움이 됐다. 부모님께서 공부하라며 TV를 사주지 않은 것이다.

 

세계음악을 알게 해준 프랑스 가수인 장 자끄 골드먼이 1992년에 내한 공연을 왔을 때,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만 공연하고 한국에 안 오는 가수가 많았기에 기자가 물어봤더란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범 국가인 일본에서는 공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최근 한국 그룹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일본 캐릭터가 전광판을 가득 채웠다. 좋아하는 가수가 드디어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첫 곡이 일본어 노래다. 한국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가 하필이면 일본어 뮤직비디오만 있다. 아, 어쩔 수 없이 짜게 식는 이 마음이란!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연예인이라면 나의 철학에 따라 하이패션 상표의 모델을 거절하고, 일본 시장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어쩐지 일본 제품을 사고, 일본어 노래를 들으면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괴롭혔는데도 반성하지 않는 나라를 눈감아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도 일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개개인과 집단화된 일본인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감정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개인이 모인 집단이 죄가 있다면 개인들도 그것을 용인해준 책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80년 가까이 흐를 동안에도 그런 사회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 건 일본인들 스스로다. 인권을 강조하는 요즘 같은 세대에게 제국주의는 전혀 멋지지 않다. 일본이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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