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한국인 전원의 자진 사퇴가 제가 상상하는 것처럼 혐한이 아닐 수도 있어요. 유력한 후보 중에 하나일 뿐이죠. 세 명 모두에게 건강 상에 문제가 생겼거나 향수병에 걸렸거나 연습생들끼리 싸워서 도저히 같이 활동하기 어렵다고 결정했거나 혹은 향후 활동 시에 계악 조건이 안 맞았을 수도 있죠. 그런 거라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혐한이 자진 사퇴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두 달 여동안 한일 팬덤의 움직임을 보면서 일본의 혐한 정서 자체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돌아가서 만약 정말 강력한 단 한 명의 S맨이 있었다면 그건 개인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결국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원인이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정부는 돈을 집행하면서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생리상 기업의 물건을 사주는 대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를 테면 한국의 한류를 의식해서 만들어진 쿨재팬 자본이 들어간 프로젝트인데, 한국인의 이름이 그대로 전국에 생방송되고, 한국인 멤버가 제이오원 즉, 일본의 레이와 시대를 여는 글로벌 그룹(글로벌 그룹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의 일원이 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참고로, 일본 트친의 말로는 JO1에서 J는 Japan, O1은 숫자 0이 일본어로 레이로 발음해서 새로운 연호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한국인이 끼기는 어려울 것 같죠?
다시 생각해보면, 새 그룹의 일원으로 데뷔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난 12월 11일에 새로운 그룹이 탄생했는데, 일본 내에서 음악, 패션, 미용 등 케이팝스럽다고 비판을 많이 듣는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프로그램 중반까지 콘크리트 상위층이 유독 지탄의 대상이었는데, 사실상 경연 기간 내내 악플의 주요 대상은 한국인 연습생이었어요. 만약 데뷔했다면 미디어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한국인들이 넷우익들의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겠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가정이 맞다면 mnet Japan에서 추진하는 G-egg는 무슨 배짱인 건지. 아, 이건 처음부터 한일합작을 표방했으니까 괜찮으려나요?
결과적으로 일개 오락 프로그램조차 영향을 주는 혐한 정서가 일본 문화의 발전이나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도 불편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내가 이스라엘이라서 독일인인 베토벤이 작곡한 운명 교향곡을 듣기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듣지 않는 사람이 손해인 거죠. 물론 기본적으로 한국인 멤버가 글로벌 진출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각이 너무 달라서 이런 비유가 안 통할 수도 있겠네요. 한편으로는 어떤 일본분들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싫어해서 일본의 혐한 세력처럼 과격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정작 지금 한국에서는 극우와 일빠때문에 말이 많아요. 식민지 시절때문에 전반적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정서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처럼 일본인한테 직접적으로 테러 행위를 한다거나 혐일 서적들이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혐일 방송이 시도 때도 나오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심지어 극우는 데모할 때 일장기를 들기도 하고,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요. 웃프네.
개인적으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악화된 한일 관계가 방송이 일정 부분 영향을 줬을 거라는 생각도 해요. 물론 원래부터 일본에 혐한이 많기는 했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과 지소미아 문제로 계속 여론이 뜨거우니까 한국에 대한 반감이 무의식 중에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11명의 얼굴을 바뀌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한국에서 방송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헤일로 친구들이 지금까진 참 운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른들 말씀이 인생에서 내리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길이 있다고 하니까 힘내길 바래요. 지금 일본 팬분들은 빌보드 순위에 올린다고 열심히 하시던데, 이런 팬들의 사랑 때문에라도 조만간 빛볼 날이 꼭 있으리라 믿습니다!
--
프로듀스101 재팬과 한일 정치 상황
04/11 제작 발표회
07/01 일본 경제보복 조치
09/26 첫 방송
11/22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12/11 최종회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