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용 스페이스 오페라
예고편을 비롯해 '한국 최초의 SF 영화'에 초점을 맞춰서 마케팅하고 있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가족 영화에 더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디즈니가 만든 실사판 SF영화 같은 느낌이다. 이를테면 장선장, 박씨, 업동이의 사연은 말로 설명하고 지나가지만 태호의 사연만은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나온다. 유명한 스타워즈 Star Wars의 내가 니 애비다 I am your father는 상대가 안 된다. 실제로 12세 이상 관람가로, 코로나 19 바이러스 없이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우주 활극+국뽕+가족 나들이용으로 천만 관객도 가능해 보인다.
부유한 백인 악당
SF영화에 나오는 우주 악당은 대개 얼굴이 하얀 착한 편에 비해 말도 못하게 못생겼고, 거무튀튀하며 상종못할 인간이다. SF영화가 아니더라도 서양권 영화에서 표현하는 악당은 그것이 사람이든, 괴물이든, 외계인이든 대개 무식한 이슬람, 미개한 흑인, 무지막지한 몽골인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건 단순한 비약일까? 그런데 이번에는 백인이 돈이 많고 기술력은 갖췄지만 정의롭지 못하며 인류애가 결여된 탐욕스런 악한으로 등장한다.
지구를 구하는 유색인
할리우드에서 만든 SF영화에서 유색 인종은 대개 대사가 거의 없는 하급 직원이거나 괴짜 천재, 액스트라 1, 2, 3 아니면 우주인의 공격을 받고 망연자실해 하는 방콕, 북경, 도쿄의 표정으로 스쳐간다. 그런데 승리호에서는 백인 악당과 그의 사악한 음모를 저지하러 한국인이 이끄는 팀을 중심으로 다국적 청소부가 총출동한다. 물론 아직도 하층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TV에서 본 듯한 검은 여우단의 인질극. 그런데 알고 보니 좋은 사람들이었어.
젊은 여자 선장
팀 구성원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여자지만 이래 봬도 승리호의 선장이다. 무려 과거 힘깨나 썼던 갱단 두목과 기동대 대장 출신을 부하로 두고 있으나 성격이 괄괄해 무리해서 우주선을 사는 결정을 내려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여성성이 제거됐다는 한계는 있으나 나름 프랑스인 청소부한테서 사랑받고 있으니까.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명석한 두뇌와 함께 과감하게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를 살해할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대담함을 갖추고 있다.
트렌스젠더 로봇
유해진이 연기한 업동이는 원래 전쟁터에서 싸우는 전투용 로봇이었으나 지금은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다. 피부이식와 골격 개조를 하기 위해 알뜰살뜰하게 돈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꽃님이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꽃님이가 언니라고 부르니까 좋아한다. 영화 말미에는 드디어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되고, 근사한 목소리까지 고르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릴케의 시를 읽으며 교양있는 로봇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쩐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다.
부성애 강한 미혼부
영화계에서 가족이라는 소재만큼 장르를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받아온 게 있을까? 그런데 이 영화는 무려 결혼도 하지 않은 20살의 미혼부다. 태호에게는 여자나 부인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안정적인 직업과 신분을 포기할 정도로 부성애가 넘친다. 지금도 딸의 시체라도 찾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 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자녀 교육까지 신경쓴다.
다언어를 사용하는 SF영화
주요 인물은 한국인이고 한국어로 말하지만, 검은 여우단과 거래할 때는 스페인어를 말하고, UTS를 설계한 설리반은 영어를 쓴다. 다른 청소함을 모는 항해사는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로 투덜거린다. 장선장을 좋아하는 우주 청소부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주문을 받는 직원은 필리핀의 타갈로그어로, 승리호를 찾아온 경찰은 덴마크어로 말한다. 검은 여우단의 대표는 나이지리아의 피진어로 대화한다. 그 밖에도 번역기를 이용한다는 설정에 따라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번역기를 사용할 꺼라는 미래는 누구나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F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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