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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승리호의 무대는 도저히 2092년까지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하지만 미술로 표현된 공간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분명히 미래는 미래인데, 어딘가 친근하다. 등장인물의 구성 또한 오즈의 마법사 판박이다. 마법구두를 신은 도로시(강꽃님), 뇌를 갖고 싶은 허수아비(태호), 용기를 갖고 싶은 겁쟁이 사자(타이거 박),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업동이), 못된 마법사(설리반) 그럴듯 하지 않나!

 

양말과 신발

인간이 신발 없이 살 수 있을까? 인간의 신체가 진화하지 않는 한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신발은 물과 공기처럼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릴 여유가 없다. 영화에서 신발은 계급을 상징한다. 태호는 화물선을 개조한 우주선의 솜씨 좋은 조종사이지만 구멍이 난 양말을 신는다. 영화 초반부 시선을 끄는 건 클로즈업되는 발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거리에는 양말만 신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으며, 주인공조차도 비닐봉지를 신거나 일상에서 신기에는 불편해 보이는 마그네틱 신발을 신는다. 심지어 쓰레기통을 뒤져서 허름한 운동화를 발견하고는 좋아한다. 나중에 큰돈을 벌게 되자 제일 먼저 산 것도 흰색 운동화 10켤레였다. 기생충에서 냄새가 계층을 분간하는 기준이 됐다면 승리호에서는 발을 감싸는 신발이 격차사회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진짜 지폐

태호는 사랑하는 자식 때문에 돈을 번다. 그런데 그것은 자주 주객이 전도된다. 태호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부와 명예를 포기했다. 그런데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 어느덧 아이는 뒷전이고 돈 버는 데 혈안이 된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아이를 잃는다. 꽃님이 나타났을 때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은 이 아이가 태호와 모종의 관계를 갖게 될 것을 짐작한다. 아이와 태호의 관계는 첫 인상이 매우 안 좋았지만 그러나 후에는 죽고 못 사는 연인의 이야기와 다름 없다. 하지만 태호는 이번에도 돈에 집착한다. 아이가 폭탄이라고 생각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돈 되는 꼬마라고 지칭하며, 그림을 그리고 생리 현상을 참지 못하는 아이 자체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된다. 태호에게는 여전히 돈이 최고다.

 

화투 놀이

지금보다도 훨씬 발달한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손에 화투를 들고 여가를 즐긴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그동안 마블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한 SF 혹은 판타지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남의 물건을 훔치고, 갖가지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기려고 한다. 히어로물 못지않은 이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현재는 적당히 때가 묻었으며, 때로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도로시가 폭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허둥지둥 몸을 피하고, 가위바위보로 생포할 사람을 결정한다. 포상금을 협상하거나 분배하려는 장면은 유치해서 그야말로 실소가 튀어나온다. 전혀 멋있지가 않다. 한가족임에도 우리네 여느 가정처럼 마냥 화목하지도 않다.

 

증기 동력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초반 장면 중에서 타이거 박의 문신과 굵은 땀방울이 가득한 뒷 모습은 스팀펑크 장르에서 익히 보았던 기계 장치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우주선이 날라다니는 미래 세계에서 사람의 힘으로 동력을 돌린다는 건 넌센스에 가깝다. 하지만 보통 이런 장르는 이러한 언밴러스한 부분이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부분은 고급 승용차를 몰 정도로 능력있고, 사람의 손목을 자를 정도로 잔혹한 인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타이거 박은 순수한 구석도 있으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작살과 도끼

SF영화에서는 도대체 왜 인간이 직접 레이저총이나 광선검을 들고 싸우는 걸까? 전혀 미래를 다룬 영화답지 않다. 하지만 그편이 훨씬 재미있다. 군인은 안 보이고 미사일만 쏘아대는 전쟁, 돈다발이 흩날리는 장면을 연출할 수 없는 인터넷 송금은 소위 그림이 안나온다. 그래서 SF영화는 자주 아날로그적이다. 더군다나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도구가 등장해주는 것이 좋다. 우주에는 소리가 없고, 불꽃도 활활 타오를 수 없지만, 지구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SF영화는 과학을 넘어 선다. 모든 SF영화는 현실을 반추하는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촌스러운 이름

요즘 사람들도 글로벌 시대를 의식해 제니, 안나와 같은 외국 이름같은 이름을 짓곤 하는데, 먼 미래를 다루고 있음에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구수하기 이를 데 없다. 장선장이라고 불리는 장현숙, 타이거 박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지만 정작 박씨로 불리는 박경수, 누가봐도 업어다 온 것 같은 업동이, 도로시라는 외국어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한글 이름인 꽃님이라고 불리는 꼬마와 하늘의 별이 된 순이까지. 암호같은 이니셜이나 부르기 쉬운 닉네임도 아니고 SF라는 장르하고 전혀 안 어울리게 느껴지다 못해 요즘 감각으로도 촌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서 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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