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끼는 주전자를 버리려는 딸. 그걸 막는 엄마가 다투고 있다.
딸: 주전자 싸매고 저승 갈꺼야? 왜 그래 진짜?
엄마: (단호하게) 안돼. 버리지마. 이거 버리면 죽어버릴꺼야.
딸: 이게 뭐라고?
엄마: 니네 아빠가 사준거야.
딸: 뭐?
엄마: (회상에 빠져서 날서 있던 말투가 부드럽게 바뀌며) 추운 겨울에 갑자기 이걸 들고 온거야. 그때 우리가 사글세 살았잖니. 허름한 반지하 방이었는데, 검은 외투 어깨에 붙은 눈을 털털 털어내더니 불쑥 손을 내미는 거야. 근데 너무 예쁜 것 있지. 내가 파란색을 좋아하잖니. 어떻게 알았는지.
딸: (말을 뺏았아) 알아아지. 엄마 남편인데. 엄마가 파란색을 좋아하는 걸 모르면 병신이지.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지마.
딸: 아빠? 아빠? 엄마 버리고 나 버리고 도망간 아빠? 그게 아빠야?
엄마: 아빠한테 그게라니.
딸: 엄마 말고 다른 여자가 좋다잖아. 그 여자랑 (말을 못 있다가) 내 동생도 낳않잫아. 그래도 좋아?
엄마: 그래도 니 아빠야. 니 아빠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딸: 어릴 땐 예뻐했지. 그러면 뭘 해? 딴 식구 생기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는데.
엄마: 물건에는 영혼이 들어 있어. 아빠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사준거야. 그걸 사주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그랬겠니.
딸: 행여나. 엄만 바보구나. 아빤 늘 어디서 얻어온 걸로 생색낸거야. 자기가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운 거. 선물 받았는데 버리긴 아까운 것. 아니면 중고로 팔기 귀찮으니까. 내가 뭘 새로 사서 준 꼴을 본 적이 없어. 엄마 생일 때 밥 한끼 챙겨준 적 있어? 엄마, 늘 혼자였잖아. 아니 늘 엄마와 나 둘 뿐이었어. 엄마만 그랬는지 알아? 나도 그랬어. 나도 늘 혼자였다구. 책임감을 좀 가져봐!
엄마: (듣는 척도 안하고) 이걸로 물을 끓여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실 커피는 니네 아빠가 좋아하지 나는 안 좋아하잖니.
딸: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기적인 ㄴ
엄마: (꿈결 같이) 그래도 정말 맛있었어. 한 번만이라도 다시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딸: (외로운 엄마에게 자신이 아빠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게 마음 아파서) 엄마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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