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눈에는 사람들 사이에 목줄이 보인다.
금방 끊어질 듯한 목줄
절단 기구로도 끊어지기 어려운 목줄
강하게 시작하지만, 약하게 연결돼서 다른 쪽은 연결된 줄도 모르는 목줄
벗어나고 싶은데, 강하게 붙잡는 목줄
명주실처럼 매끈한 목줄
유릿가루를 입힌 목줄이라서 움직일 때마다 쓰리고 피가 나는 목줄
만약
그게 밝은 낮에만 보인다면?
그게 어두운 밤에만 보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녁 늦은 시각,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 오래된 연인처럼 보인다.
여자: (내레이션) 오늘 저녁에 처음 만났다. 그런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다.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가 진심인지, 우리의 인연이 운명인지는 낮에만 알아볼 수 있다.
남자: 난 내일 여기 없어. 난 너랑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여자: (내레이션) 남자는 모텔에 가자고 했다.
남자: 너도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분명 날 좋아하잖아.
여자: (내레이션) 이 남자를 믿을 수 있을까?
남자: (시무룩해져서) 왜 말이 없어?
여자: (실망하게 한 게 미안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난 아직 널 잘 모르니까.
남자: 시간이 부족하다? 난 이 느낌만으로 충분한데. 날 믿지 못하는 거야? 우리 오늘 즐거웠잖아.
여자: (남자를 잡을 양손을 흔들고 고객을 끄덕이며) 좋았지. 나도 좋았어. 말이 통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남자: 그거론 안 돼? 이렇게 손도 잡을 수 있는데.
여자: (시선을 돌리며 내레이션) 술에 취하지도, 조명에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시각, 난 그때에만 그와 나의 인연의 끈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남자: (바람이 날리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며 장난스럽게) 이렇게 아름답고, 영감이 넘치는 밤을 믿지 못한다고? (타이르듯이)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 거야.
여자: (지긋이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와 함께 내레이션)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태껏 모든 인간관계를 목줄로 판단해 왔구나! 그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못하게 돼버렸다.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여자: 미안해. 다음에.
남자: (칭얼거리듯) 연락처도 안 주면서.
여자: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거야. 분명히.
남자: (서글픈 표정으로) 그런 게 어딨어? 노력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인 거야. (약간 울먹이며) 아무리 애원해도 연락처도 안 주고, 오늘 하룻밤만 같이 있대도 싫다고 하고. 난 이 순간이 간절하고, 너무 소중한데. (설득하려고) 그래,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난 건 맞아. 하지만 그게 이제 겨우 시작일 수도 있잫아. 아니야?
여자: (내레이션) 한 가지 분명한 건 목줄을 쥐고 있는 건 나인 것 같다. 그가 날 더 원하니까. 목줄을 잡아달라고 주위를 빙빙 도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남자: (단호하게) 다음은 없어. 난 운명 같은 것 믿지 않아. 언젠가 엄마가 사주를 보고 와서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거야. 그게 듣기 싫어서 한동안 그 반대로 행동했어. (어이없다는 듯이) 왜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하는 건데?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거야. (또박또박하게) 나는 오늘 밤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왜냐하면 네가 연락처를 끝내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추억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거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변해도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어렸을 때 헤어진 부모도 다 큰 자식을 못 알아보는데, 남남인 우리가? 그 언젠가?
여자: 만약 다시 만나지 못하고, 네 말대로 못 알아본다면 그건 인연이 아닌 거야. 어쩌면 오늘 밤도 그런 날이 언제 있었나 싶게 영영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
남자: (아련하게) 반대로 지금 붙잡지 못한 걸 영원히 후회할 수도 있지. 강렬한 순간은 주변 풍경도, 냄새도,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잖아.
둘이 한참을 말없이 마주 본다.
여자: (내레이션) 그의 눈빛이... 포기한 것 같다.
산책을 갔다가 공원에서 똥꼬발랄한 강아지를 봤다.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달려 가고 싶어하는데, 목줄때문에 자꾸만 주인한테로 돌아온다. 반대 입장이었다면 목줄을 놓아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