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아서자 이솝의 얼굴을 보였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차갑게 보였다. 넋이 나간 사람 같다. 댄은 그의 뒤를 따랐다. 사령관의 발걸음이 이상하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솝이 단상에 두어 발자욱을 띄었을 때 무엇에 홀린 듯 갑자기 뒤돌아섰고, 그가 지닌 진실의 칼은 댄의 목덜미를 향했다. 하늘의 모든 빛이 쏟아내리듯 강렬한 빛이 번쩍 비췄다. 그리고 댄은 태양 너머로 이솝을 바라보듯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사령관은 똑바로 댄의 목덜미에 칼 끝을 갖다 대었고, 그것은 조만간 그의 목덜미를 덮칠 것만 같았다. 진실의 빛은 이솝과 댄만 보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얼빠진 모양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댄은 진실의 칼이 내리뿜는 뜨거울 열기와 강렬한 빛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뜨거운 불길에 온몸이 타들어갈 것이다. 거짓을 말하면 칼에 찔려 죽을 것이요, 설령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진실의 칼만 튕겨져 나갈 뿐 결국 배신자로 낙인찍혀 죽게 되리라. 한 번 의심된 것은 삶 혹은 죽음, 밤 혹은 낮뿐 회색이란 인정되지 않는다. 벌써 불꽃은 갑못을 태우고 하얀 가슴을 향해 맹렬히 타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솝이었다.
'너는 그의 아들인가?', '너는 그의 사도인가?' 이솝의 머리 속에는 이 두 가지 질문으로 혼돈스러웠다. 때문에 댄은 어느 것에도 답할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은 맞다. 하지만 그의 사도는 아니다. 문제는 진실의 칼은 오직 하나의 답변만을 원한다는 것이고 만약 이솝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질문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느 쪽으로도 대답할 수 없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댄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대로 죽어가는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솝의 얼굴이 선명해지면서 그의 질문에 진실로써 대답할 수 있었다.
"너는 그의 아들인가?"
"네"
댄은 그대로 쓰러졌다. 갑옷은 타버려서 허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고, 다른 곳도 그을렸다. 얼굴은 뜨거운 열기에 벌겋게 타오랐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부하들이 그를 끌고 나가는 동안 이솝은 중앙에 놓인 의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부하들은 하나 둘 이솝의 곁을 떠났다.
왜 '너는 그의 사도인가?'라고 묻지 않았을까? 그의 사도가 아니라면 그의 아들이어도 상관없던 것이 아닌가. 이솝은 댄이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 구제할 방법이 없음을 알고 괴로워했다. 그는 우리의 형제, 자매를 죽인 원수이다. 그런데 누가 그의 아들에게 권위를 주고 싶어하겠는가! 더욱이 이제 그에게는 해명의 기회조차 없었다. 진실의 칼 앞에 대답한 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심받은 자의 형벌이다. 그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건만 이솝은 스스로 자책하느라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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